대리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새로운 인연을 찾는다.
2012-12-03 03:59来源:달리 관광 리조트浏览数:4875

대리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새로운 인연을 찾는다.



  대리는 세계 여행객들의 꿈이 시작되는 곳이다. 옛 색과 향의 거리는 낭만적인 흔적을 남겼으며, 청풍명월과 동행하며, 작은 고성의 이야기를 따라 옛 꿈을 찾으며,  푸른 돌길을 밟으며 옛 놀이를 한다. 나비천에 가서 금 같이 순결한 사랑을 경험한다. 숭성사 삼탐에 가서 불교국의 도를 경험하며, 남조풍정도에 가서 왕도의 장엄함과 기백에 절을 한다. 푸른색의 얼하이 호수에 가서는 옛 기억을 따라 새로운 인연을 찾는다.


숭성사 삼탑

 숭성사 삼탑은 따리 여행의 표지로, 대리 역사문화의 증거이다. 기원전 834 ~ 840年 삼탑의 중심탑인 천심탑, 높이 69.13미터가 세워졌다. 이 탑은 서안(西安) 대소안탑(大小雁塔)과 유사한 전형적인 당대(唐代)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세개의 탑은 정립의 형세를 이루고 있으며, 통일성과 조화성 그리고 하나됨을 이루고 있다. 삼탑 주변에는 규모가 웅대하고 큰 숭성사를 지었으며, 대리국일 때에는 아홉 국왕이 퇴위하여 중이 되어, 숭성사 주지가 되었다. 불교가 부흥하여 발전한 대리국(大理国)일 때에는 백성의 빈부를 불구하고 집집마다 불당이 있었다.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모든 손에서 불주(목주)를 놓지 않았으므로 대리국은 “불교국가(佛国)”라 불리었으며, 숭성사는 “불교의 도시(佛都)”라고 불리우는 명예를 얻었다. 예전에는 사찰 주변에 많은 사찰과 탑이 있었다. 남조국후의 대리국은 불교가 더욱더 발전하여 “불교의 나라(佛国)”,“묘향국(妙香国)”이라고 불리웠고 숭성사는 “불교의 도시”라는 이름은 가지게 되었다. 숭성사가 건축된 이후 숭성사는 남조국, 대리국의 불교활동 중심지로 되었고 대리국시기에 와서는 유명한 황가(皇家) 사원으로 되었다. 대리국시기 황가 사원으로 건축됐던 것으로 9명의 대리국 왕이 출가해 수행(修行)한 적도 있다. 그 당시 대리지역에는 관음 숭배가 성행하였고 숭성사는“성(圣)”관음을 많이 숭배하였다.

 숭성사 삼탑은 세우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수천년동안 바람과 비를 맞으며, 해빛에 그을린 것 외에 30여 차례의 강한 지진의 시험을 경험했다.




호접천

백족사람들의 마음속에 호접천은 진실한 사랑을 성지이다. 드라마<오타금화>중 남녀주인공(아붕과 금화) 서로 노래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는 장소이다. 지금까지 매년 4월 15일 호접회가 열리면 각 지역 백족 청춘남녀들이 모두 이 꼿에 모여 노래를 통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정인을 찾는다.

호접천은 온천, 나비, 나무등 “삼절”이라고 불리었다. 온천의 수질이 깨끗하고, 아무런 오염도 없으며, 태양이 나오는 3월에서 5월 사이의 봄에는 수많은 나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무는 온천에 거꾸로 기울져 무성하게 끈임없이 이어져 있으며, 오색이 찬란하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기이한 경관을 이룬다.